요즘 학위 취득 유예를 하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종종 만납니다. 당장 일하지 않고 시험을 준비해서 더 나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졸업을 하면 오히려 커리어에 공백기만 생기니까, 학생으로서의 신분은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스펙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며 나타나는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 일을 하지 않고 조금 더 미래를 준비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시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그런 선택을 쉽게 이해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이전 학교를 자퇴하고 남들보다 1년 늦게 다른 대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입니다. 이른 나이에 졸업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선배들을 부러워하며 살았습니다. 반대로 저와 같은 나이의 동기들이 있다는 사실은 마음속에서 잊어버린 듯 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비교할 우월한 몇몇 상대는 보여도, 나와 같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은 원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쉬었음 청년이 몇십만 명이 되었다고 해도, 내가 학위 취득 유예를 겪었다면, 시험에 떨어졌다면, 나는 완전히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집니다.
이미 자신의 자동차가 있고, 취업을 했고, 결혼도 했고, 집도 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잘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 졸업을 미루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원래 잘 보이지 않습니다. SNS에는 합격한 사람이 글을 올리고, 집을 산 사람이 사진을 올리고, 결혼한 사람이 청첩장을 올립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조용히 다음 기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의 '행복 적응(Hedonic Treadmill)'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아무리 주위 환경이나 물질적 조건이 개선되어도 곧 그 상태에 익숙해져 다시 본래의 감정 기본값으로 돌아가며, 오히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결핍을 만들어냅니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많은 불안도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인간의 삶 자체는 분명히 더 나아지고 있습니다. 비록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지만, 저소득층을 포함한 전체적인 삶의 질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습니다.
한스 로슬링의 저서 <팩트풀니스>에 따르면, 전근대까지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사회는 1~4단계의 구분 중 가장 빈곤한 상태인 1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1단계 사회에서는 일평균 소득이 2달러에도 미치지 못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런 상황에서는 학위 취득 유예나 장기간의 시험 준비처럼 미래를 위한 투자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반면 현재 대한민국이 속한 4단계는 일평균 소득이 32달러를 넘는 단계로, 안정적인 전력과 수도 공급, 의료 서비스, 교육 기회 등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부족한 점만 바라보지만, 사실은 과거의 부유층조차 누리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일상으로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더 행복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가 발전할수록 기대도 커지고, 책임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라고 한다면, 저는 한사코 거절하고 싶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짚어보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일이 있다면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저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통계를 확인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7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웬만한 지방 도시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패자가 늘어난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할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사실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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