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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활동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중생활을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평범한 학생이나 직장인이지만, 인터넷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작가나 인플루언서로서
말입니다. 미디어는 이런 삶을 더 부추깁니다. 스파이더맨도, 레디 플레이어 원의 주인공 웨이드 와츠도 그런 캐릭터입니다. 미디어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수요에 맞춰 만들어지고, 또 그런 미디어를 보는 사람들은 다시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이클이 만들어집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수능을 막 끝낸
2019년, 저는 그동안 취미로 그려왔던 그림을 더 확장시켜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 덕분에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경험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외국의 사람들을 만나고, 팬아트를 그려 원작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있었고, 작은
규모로나마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반면 그런 기억들 중 상당수는 이미
사라진 예전 계정들에 묻혀 있습니다. 저는 뱅크시처럼 완벽하게 익명이고, 논란거리 하나 없는 계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기억이 담긴 계정들마저 삭제해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한 번 제 정보가 인터넷에 유포된
적이 있습니다. 범인은 제가 알던 사람이었고, 그 일 이후 몇 년 동안 그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경험이 제 강박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그림을 올리면서도 인터넷이 무서웠고,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를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과
사이가 틀어질 때마다 계정을 삭제했습니다. 그분들이 제가 부끄러웠던 모습을 여러 사이트에 퍼뜨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그림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만 같았고, 그래서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계정을 새로 만들 때마다 저는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완벽하지도 않았으면서
완벽한 계정을 만들기 위해 혼자 싸워왔던 것 같습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심지어 미디어 속 스파이더맨과 웨이드 와츠조차
그 이중성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지금 제가 오래 창작을 할 수 있는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안정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제가
소중히 여기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도망치고 싶어 했던 현실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분들에게서 온라인에서
활동할 힘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라면 반드시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거나, 반대로 반드시 이중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나는 어디까지 나를 공개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무조건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제 제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솔직하게 할 수 있는 밸런스를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그 상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익명성도, 완벽한 공개도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저를 지켜낼 수 있는 선을 찾았습니다.
앞으로도 안쥐로서 떠나지 않겠다고 여러분께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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